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MK 울트라 (문단 편집) === 밝혀진 실험 내역 === * 채터 작전: 미 해군에서 실시한 작전으로, 신원 확인 및 취조 과정에서 마약을 사용하는 것과 요원들 선발에 대해 연구한 작전. [[6.25 전쟁]] 시기인 1953년에 기간이 만료되고 또 다른 프로젝트가 성공함으로써 폐기되었다. * 아티초크 작전: 최면, 모르핀 중독(및 그로 인한 금단 현상)과 기타 방법들을 사용하여 피실험자들의 기억을 삭제하는 것에 대해 연구한 작전. 리처드 헬름스가 CIA [[미국 중앙정보국#s-2.3|국장]]이었던 앨런 웰시 덜레스에게 보낸 메모에 의하면 이것이 1953년 4월 13일에 MK 울트라로 발전했다고 한다. 1952년 1월에 쓰인 메모에 남아 있는 문장이 강렬하다. > "Can we get control of an individual to the point where he will do our bidding against his will and even against fundamental laws of nature, such as self-preservation? > (자기보호 본능 같은 자연의 기초적인 법칙을 거슬러가면서까지 개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의지를 거스르고 우리 명령을 따르도록 조종하는 것이 가능한가?)" 위의 아티초크 작전 대목에서 설명했듯이 [[6.25 전쟁]]이 끝나 가던 1953년 4월 13일에 CIA [[미국 중앙정보국#s-2.3|국장]] 덜레스가 [[6.25 전쟁]] 이후 미국으로 귀환한 포로들 중 일부가 공산군에게 받은 세뇌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이를 소재로 다룬 유명한 영화가 바로 1962년에 만들어진 [[프랭크 시나트라]] 주연의《[[맨츄리안 켄디데이트]]》(The Manchurian Candidate). 2004년에 [[걸프 전쟁]]을 배경으로 하여 [[덴젤 워싱턴]], [[메릴 스트립]] 주연으로 리메이크했다.], "공산군의 가공할 세뇌기술"[* 그런데 당시 [[중국]]이나 [[소련]]의 세뇌 연구 수준은 미국보다 한참 뒤떨어졌으며 이 "세뇌"도 놀라울 만큼 매우 단순한 방법으로 행해졌다. 당시 중국 장교들은 포로들에게 미국 체제에 대한 온건한 수준의 비판문을 자의로 작성하게 하고 보상으로 약간의 간식이나 담배 등을 제공해 주었으며 시간이 지나면 중국 장교는 미군 포로에게 자기가 썼던 글들을 보여주며 "당신이 쓴 것을 보건대 당신은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 시점에서 이 미군 포로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데 첫째는 자신은 그저 작은 보상에 홀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늘어놓은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이고 둘째는 사실 자신은 원래부터 사회주의자였다고 자기를 속이는 것이다. 부끄러운 사실을 시인하기 싫어함과 동시에 남들은 간식과 담배를 받는데 홀로 소외되길 원하지 않는 다수의 사람들은 대개 후자를 선택하고 '''여기서부터는 미군 포로 본인이 자기 자신을 세뇌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인지부조화]] 문서 참조.]에 경악하여 미국도 자기네가 잡은 포로들에게 똑같이 세뇌해 보기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다. [[매카시즘]]이 한창이었던 미국은 물론이고 [[캐나다]] 정부도 이에 가세했다고 하며 [[영국]] 정부에서도 이에 대한 연구를 독자적으로 진행했지만 그 실체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물론 이렇게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경우는 실제 피실험자나 피해자가 없거나 극히 적어 입을 막을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MK 울트라는 워낙 엄청난 스케일로 실험했기 때문에 꼬리가 잡혔을 뿐이다. 1964년에는 "MKRESEARCH(MK리서치)"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고 [[마인드 컨트롤]]과 [[냉전]] 시대에 생포한 소련측의 스파이들에게 자백제를 먹여 취조하는 과정을 연구하게 되었다. 물론 이것도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밝혀진 것이 없다. 하지만 1973년에 당시 CIA [[미국 중앙정보국#s-2.3|국장]]이었던 리처드 헬름스(Richard Helms)가 대부분의 MK 울트라 문서들을 파기했기 때문에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게 되었다.[* 당시 [[워터게이트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2만여 장의 문서가 잘못 보관돼서(...) CIA도 까먹었다가 나중에 1977년 상원 정보위원회에서 주관한 청문회에서 당시 CIA [[미국 중앙정보국#s-2.3|국장]]이었던 스탠스필드 터너 예비역 해군대장에 의해 공개됐다. 1974년 12월 뉴욕타임스에서 CIA가 미국 시민들을 포함한 다수를 대상으로 불법적인 실험을 했다는 것이 폭로되었다. 프로젝트가 진행된 기간은 1950년대 초반에서 1960년대 후반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후에도 계속 관련 연구가 이루어졌다는 증언이 있다. 상술한 프랭크 올슨이라는 박사의 경우 MK 울트라 작전에 비판적이었고 탈퇴를 시도했는데 이에 따라 CIA가 입막음용으로 죽였다는 것이 매우 유력하다. 올슨의 죽음에 대해서는 [[https://www.netflix.com/kr/title/80059446|어느 세균학자의 죽음]]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자세히 묘사된다. 실험 자체가 막장인 데다 향정신성 약물에 절여진 피험자를 상대로 성과가 나오지 않자 눈길을 돌려 "일반인이 LSD에 노출되면 어떻게 되는가" 따위를 연구한답시고 '''같은 CIA 직원이나 연구원에게''' [[자폭|LSD를 몰래 뿌리거나 커피에 몰래 타서 마시게 하는]] 등 프로젝트 내부에서도 서로를 실험체로 써먹는 일까지 나왔다. 연구윤리와 도덕성의 헤이가 스스로를 망가뜨린다는 걸 몸소 보여준 셈. 언론 폭로도 없었고 비밀이 완벽하게 유지되던 1973년 시점에 CIA가 자체적인 판단에 따라 중단한 데다 기록까지 알아서 파기한 것을 보면 의외로 비용 대비 효율성이 낮거나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나름대로 쓸모가 있었다면 어떻게든 기록을 남겨 놓거나 해서 나중에 참고할 방법을 찾았을 텐데 그러지 않고 거의 대부분의 기록을 그냥 파기해 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거대한 프로젝트는 그 자체로 돈 잡아먹는 하마[* 프로젝트 진행인력들 자체가 고급인력들이고 보태서 비밀엄수 서약을 대가로 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보상이 필요했다. 소련 견제+호경기라는 핑계로 적당한 돈낭비는 용납되던 시대라서 가능한 행동이었다고 봐야 한다.]라서 언젠가는 들통날 수밖에 없었다. 파기 직전인 1972년에도 MK 프로젝트가 헛짓거리였다는 평가가 기록된 바 있다. 아무튼 워낙 충격적인 사실이다 보니 여전히 이를 [[도시전설]]로만 아는 사람도 많다. [[http://www.nytimes.com/packages/pdf/national/13inmate_ProjectMKULTRA.pdf|MK 울트라 보고서 문서]]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